애인(愛人)
만일 내가
한 가슴에 푸르게 새겨진
낯익은 이름일 수 있다면
가을 눈빛에 조금씩 익어가는
열매 같은 애인이고 싶습니다
고단한 숨결일랑 단물로 그득 채우고
언제나 그 안에 흘러 적시어
든든한 그리움의 양식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한 당신의 애인이 되오렵니다
별 하나와 달 하나와
새벽을 기다리다 물이 되어 흐르는
이슬 하나까지도
그 곁에 누워 지켜 볼 수 있다면
영원히 슬퍼도 그리할 것입니다
아, 화려한 어느 계절
밑둥만 남은 한 뿌리 위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고 죽을 수 있다면
먼 거리 위 쓸쓸히 남아도는
먼지가 될지라도
난 당신의 애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