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 동목 지소영
파도가 높은 날에는
너의 생각으로 두려움을 이겼지
폭우에도 너의 물기 어린 표정으로
버틸 수 있었다.
어떤 안개비가 가득히 내리던 날
너를 잠시 알아볼 수 없었을 때
허우적거린 손을 붙잡은 너의 투정은
끝을 모르는 철부지였지
참 예뻤던 진달래 같은 너
가난이 전설 같은 연민으로 내게로 올 때
너의 부유도
백합 같던 너의 몸도
눈 감으면 사라지는 추억이 되고 마는 것을
어찌 그리도 질퍽거렸을까
사랑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숨은 봄 만해도 좋으니
별빛으로 밤마다 안부 하는 그를
거부하지는 말아다오
형식과 위선에 익숙하여
진실을 쉽게 왜곡하는 무리에게
물들지는 말아다오
문득문득 창가에 스치는 그림자만 보여도
환희처럼 가슴에 촛불이 켜지고
길을 가다가
너를 닮은 승용차의 불빛으로도
급정거를 하곤 한다
과거는 잊힌다고 해도
오늘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구나.
어디에서건 인기척마다 흠흠 거리는 나는
사랑과 용서
그리고 내가 쇠퇴하기까지의 기다림이다
내 영혼의 뜨락에
너의 손을 빌려
솔향으로 담장을 올리고 싶은데
어느 방향으로 팔을 뻗칠까
방향계가 자꾸 원점으로 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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