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께요

"괜찮아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벌건 대낮에 못 볼것을 본 딸 아이가 참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겨우 열한살 밖에 되지 않는 딸 아이였다.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싸움하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놀라고 당황도 했으련만 딸 아이의 표정은 오히려 재미있는 것을 구경했다는 듯,
소리내어 웃기조차 했다.
부드러운 햇살이 침상에 누운 나를 사정없이 애무하는 한 낮.
남자의 차가운 살갗이 밀물처럼 쏴아아 하고 밀려왔다.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물결쳐 있었고 젖 꼭지는 곤두 서 있었다.
온 몸을 휘감는 촉촉하고 상큼한 비누향기에 취해, 비단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뜨거운 불길은 삽시간에 활화산처럼 타 올랐다.
미칠듯이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은 서로를 애무하며 차츰차츰 무아지경의 환희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살아 있다는 것, 아니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거친 파도가 철석일 때마다 몸은 어느 새 애드벌룬을 타고 하늘을 오르고 있었다.
오로지 육체의 향기에 어지럽게 취해 침대 위를 우주의 중심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정작 놀란것은 우리 부부였다.
멈추어진 화면처럼, 홀딱 빨가벗은 채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났다.
침실 문을 닫아준 딸아이의 "따뜻한 보살핌"에, 남편이 바닥으로 떨어진 체면을
추스르며 허겁지겁 욕실로 뛰어갔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왜 벌써 하교를 하였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저 콩만 한것이 어찌 저리도 능청스러울 수 있을까.
요즘 애들은 예전과 다르게 일찌감치 성 문화를 깨우친 다고는 하는데 딸 아이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어두운 성 문화를 아름다운 성으로 승화시킨 구성애의 강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짐짓 실천에 옮기진 못한 나였다.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키스 신이 나오면 민망스러움에 헛 기침울 하거나
엉뚱한 얘기로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살금살금 숨 죽여 도둑질 하듯 아이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나 가능했던 것이다.
몹쓸짓을 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대역죄를 짓는 것도 아니건만, 어떤 말로 변명을
해야할 것이며, 어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비 정상적인 남녀 관계라면 모를까, 우린 사십대 초반의 정상적인 부부다.
걸코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부부간의 애정을 자랑삼아 떠들고 다녀도 좋을 일이다
서로 다투고 서운했다가도 밤이 되면 맨살을 비벼대며 잘 수 있는 것이 부부이지 않은가.
남이라면 아무리 절친한 관계라도 결코 떳떳할 수 없는 부부만의 특권이다.
그래도 자녀에게 레슬링 시범경기를 보이 듯 버젓이 드러내며 성 행위를 했다는 말은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컴푸터에 있었다. 간곡히 호소하는 메일인 즉, "제발 이 싸이트 좀 봐주라!"는 내용이었다. 삭제시키려고 마우스를 잡는 순간 문득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동정심이 일기 시작했다.
나 또한 외롭거나 속이 상할 때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나면 속이 시원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선심 한 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클릭을 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순진했다. 아니 어리석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매일같이 대하는 편지함이건만 그리도 분별력이 없었을까. 허나 그 것은 핑계였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어떤 호기심이 나의 감각을 자극했던 것이다.
음란 싸이트였다.
화면이 뜨자마자 동영상으로 시작되는 에로물이 현란한 사진들과 함께 모니터를
가득 매웠다.
눈이 말똥말똥해지며 정신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주위를 살폈으나 집안에는 나 혼자뿐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것이고, 남편 또한 가게에 있을 것이다.
화제가 되었던 탤런트 모양의 음란비디오를 본 것도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나는 한껏 여유를 부려가며 알몸이 드러난 사진들을 꼼꼼히 살폈다.
어느덧, 그들의 환상적인 풍경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남편과 해본적이 없는 희귀한 체위의 사진들은 나의 눈과 정신을 헷가닥 뿅뿅 돌게 만들었다.
실실 본능적인 무엇이 발동했다. 그들의 즐거운 신음소리에 가슴이 사정없이 방망이질 치고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랑의 모닥불이 붙기 시작하자 정신없이 헛갈려가며 심장이 쿵쿵쿵 소리를 내었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숨이 막힐 것 같이 곤두박질치는 심장은 멎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힘찬 공격을 기대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대낮에 호출을 당한 남편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남편의 몸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신음하듯 나의 전신을 강타했다.
모니터에 드러난 결코 놓칠 수 없는 진하고 야릇한 사진들은 흐르는 시간을 자꾸만 재촉했다.
타는 듯난 갈증에 목구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일찍이 공자는 부부가 있은 연후에 부자(父子)가 있다고 했고, 공자의 손자 자사는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러니 인간세계에서 부부관계와 같은 남녀간의 열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딸 아이에게 다가갔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건만, 행여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심장은 오그라들었다.
나는 객쩍은 웃음을 지으며 짐짓 태연한 채 너스레를 떨었다.
"얘! 너도 엄마랑 아빠랑 그렇게 해서 낳은 거야! 아기 한명 더 낳을려구."
반응을 기다리려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힐끔 쳐다보던 딸아이는 "그럼 엄마가 너무 힘드시잖아요. 걱정마세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아이들에게 성을 말할 땐, 주책없다 싶을 정도로 천연덕스럽게,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신세대 엄마임을 주장하면서도 칠칠치 못한 처사에 낯이 뜨거워진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원초적인 욕망, 결코 부끄러울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 욕망에서 어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