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공간/♤겨울 연가

겨울 숲에서 / 안도현

靑岩거사 2008. 1. 14. 11:59

      겨울 숲에서  -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겁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듯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 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 쓰고
      눈사람 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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