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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이 끝내 가결됨에 따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영토분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작금의 상황에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대마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억지일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시마네현의 조례안 가결로 촉발된 한·일간의 영유권 논쟁은 새삼 우리의 지난 역사속에 가려져 있던 대마도에 대한 귀속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의 주장으로 더욱 이슈화되고 있는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문제는 독도에 대응한 단순한 감정논리만은 아니라는 면에서 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접근과 주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대마도는 거리상으로 우리나라와 훨씬 가까운 한국과 일본의 중간지점에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임진왜란을 비롯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교두보로 대마도를 이용 해왔음을 지난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대마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이미 많은 기록을 통해 알려진 바 있으나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이 적어 묻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단순 대응논리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으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대마도에 대한 기록은 그것이 단순한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료의 근거 중에서도 우리나라 고지도에 등장하는 대마도는 그 실체를 더욱 명확하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지도에 나타나는 대마도의 모습을 통해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의 실체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아울러 역사적 근거를 만들어 이 문제를 좀더 현실화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의 상황에서 고지도에 대마도가 나오니까 무조건 우리나라 영토라고 주장한다는 것도 올바른 해석의 태도는 아니지만 그동안 대마도는 당연히 일본땅이라는 우리의 의식에서 벗어나 대마도에 대한 새로운 영토관념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독도가 한국땅임을 증명하는 여러 고지도가 나와 있다. 이에 비해 대마도가 우리나라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고지도는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같은 고지도 속의 예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1530년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은 우리나라 전도 인본(印本)으로 간행된 조선전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첫머리 '팔도총도(八道總圖)'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 독도에 대한 인식이 확실했음을 보여주는 지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고지도의 맨 오른편 끝에는 대마도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지도에 일본의 한 섬을 굳이 표시할 리가 없듯이 당시 대마도를 우리나라 영역으로 인식하고 지도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정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집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여지도(與地圖)'로 불리는 지도집이다. 이 지도집의 '아국총도'는 1789년(정조13)에서 1793년(정조 17)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제1첩에 세계지도인 '천하도지도(天下都地圖)'를 비롯하여 '아국총도'와 동아시아지도, 연행로도, 일본, 유구, 관방지도가 실려 있다. '아국총도'는 400여 개에 달하는 섬들이 그려져 있어서 당시 바다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도서해안의 섬을 살펴볼 수 있는 지도이기도 하다. 이 지도에도 강원도 지역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그려져 있으며, 대마도 또한 중요한 비중으로 그려져 있다. 이 외에도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지도에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가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작자미상의'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는 산맥과 하천, 섬들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이다. 이 지도의 바다쪽은 바다의 물결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독특한 느낌을 갖게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바다에 대한 느낌이 더욱 실감이 나게 그려져 있으며 이 지도에도 대마도가 크게 그려져 있다.
이와 함께 현재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동국여지도'도 또한 당시 대마도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해준다. 공재 윤두서(1688~1715)는 '자화상(국보 240호)'을 그린 화가로 '동국여지도'는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였던 공재 윤두서가 숙종 36년(1710)에 그린 조선의 지도이다. 공재는 '일본여도'도 그려 그의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이곳 '동국여지도'에는 대마도가 실제보다도 아주 크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지도에 등장하는 대마도의 크기가 실제보다 크게 그려지고 있으나 '동국여지도'에도 과장되리 만큼 크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동국여지도'를 보면 강줄기와 산맥의 표시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였고, 주변도서를 자세히 그렸으며 섬과 육지의 연결수로까지 표시하고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약 150년 정도 앞서 제작된 것으로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인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1750년대 영조의 명에 의해 '해동지도(海東地圖)'로 불리는 방대한 지도첩이 제작되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는 8첩으로 되어 있는 해동지도가 소장되어 있는데 330여 장의 전국 8도의 군현지도집이라고 할 수 있다. '해동지도'는 각 군현의 연혁, 산천, 고적, 인구, 토산 등의 이름이 적혀 있어 지리지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도서해안의 섬들도 자세히 그려져 있다. 이 지도를 보면 제주도와 대마도를 좌우에 나란히 그리고 있어 대마도에 대한 인식과 비중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같은 고지도 속의 대마도는 이외에도 1557년(명종12)경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국보제248호), 영조36년(1765)에 제작된 '여지도서(與地圖書)', 순조 22년(1822)에 편찬된 '경상도읍지'를 비롯해, 근세로 이어지는 한말에 와서도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제작한 '조선전도'에는 한반도의 영토 범위를 간도 뿐만 아니라 대마도, 독도까지로 표시하고 있다. 대마도 정벌과 대마도의 독립성
우리 역사에서 대마도가 가장 크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 세종대의 대마도 정벌이다. 그러나 대마도 정벌 관련 기록은 다른 시대에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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