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진달래가 보고파서 몇 곳을 두고 고민하다가 남쪽 바다 여수의 영취산을 택했다. 남도여행! 새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며칠 전부터 가슴이 설렜다.
항도 여수는 남쪽으로 다도해와 한려해상국립공원을 깔고 있다. 순천과 이어진 잘록한 율촌면을 제외하면 사면이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쪽으로 광양과 마주보며 툭 튀어나온 반도에는 진달래로 명성이 높은 영취산이 있다. 매년 4월초?중순, 진달래 만발한 영취산의 갯내음 섞인 봄내음에 취하려는 수많은 등산인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4월 8일 6시 40분, 김윤수 철도산악연맹 구조대장과 오병건 부대장, 정종원 기자, 초보산꾼 이우승씨와 함께 용산역을 출발해 광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차창에 담기는 모든 풍경이 봄, 정겨운 봄이다. 두 시간 뒤 우리는 익산역에서 전라선 무궁화호로 바꿔 탔다. 11시 30분쯤에 미평역에서 내릴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즐거운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상은 가끔 엉뚱한 사건이 터져 즐거움을 준다.
열차가 곧 순천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 뒤 순천에서 장비점을 운영하는 김태호에게 안부삼아 전화했더니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하차’하란다. 채 1분도 안 되는 순간에 짐을 챙기고 일행에게 설명할 틈도 없이 무조건 내렸다. 역을 빠져나와 소문난 보리밥집으로 이동해서 행복한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교통편과 식사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고 취재팀도 한명이 보강되었다.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77번으로 갈아타니 30분만에 여수 상암초등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앞에서 좌회전해서 포장길 따라 ‘여수철망’ 공장에 이르니 12시 35분. 서울을 출발한지 6시간이 걸린 셈이다. 진례산~봉우재~영취산~호랑산 코스 산행을 당일에 마무리할 수 있다.
“형님, 우리 욕심 부리지 말죠?” “그러죠!”
김 대장의 말에 정 기자가 바로 맞장구친다. 나는 가급적 전 코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대원들의 성화에 못이긴 척 그러자, 하고 ‘여수철망’을 들머리로 잡고 출발했다.
진례산 등산안내도가 있는 자그마한 삼거리에서 무덤 여러 개를 오른쪽에 두고 철탑을 따르니 20분만에 임도가 나타났다. 능선을 따라 오르려니 주변으로 진달래꽃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른쪽의 204봉에는 만개한 벚꽃이 눈이라도 내린 것처럼 산을 뒤덮었다. 날씨가 흐려 아쉬움이 있었지만 남해의 삼봉산(420m)~관대봉(595m)~천황산(395m)을 잇는 능선이 당당하게 솟았고 그 뒤로 괴음산(605m), 남산(619m), 송등산(617m)이 사방을 경계하듯이 우뚝하다.
시원한 갯바람이 한 차례 불며 지난다. 갯바람 또한 이곳에서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이리라.
폐막사에 도착하니 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었다. 20분 후 골명재(415m) 이정표가 선 곳에 도착했는데 진달래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마음까지 붉게 물들 것 같은, 온통 진분홍 꽃천지다.
헬기장을 지나니 암릉구간이 시작되었다. 바위를 보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어서 리지코스를 가볍게 뛰어갔더니 오 부대장이 날렵하다고 한 마디. 괜히 머쓱해졌다.
온 산을 벌겋게 뒤덮은 진달래 사이로 광양제철소와 여천공단, 컨테이너 부두, 율촌산업단지가 오버랩 된다. 묘도와 하동군이 삐죽 고개를 내밀어 질투 섞인 눈초리로 이곳을 보는 듯하다.
10분이면 정상에 이르고도 남을 시간인데 우리는 산과 바다의 오묘한 조화 사이를 오가며 진달래에 흠뻑 빠져 시인이 되고 모델이 되고 사진가가 되었다. 꽃내음에 취한 우리에게 암릉지대에서 점심을 먹던 고사리산악회 회원들이 보쌈을 싸서 한입 가득히 넣어준다. 진달래 꽃밭에서 먹는 보쌈, 먹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
이정표에는 진달래 군락지에서 진례산까지가 20분으로 적혀있지만 실제는 1시간이 걸렸다. 정상표석에 영취산이라 적힌 진례산 정상 감시탑 아래에서 정상주로 와인 한 잔씩 나누고 바로 아래 도솔암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림길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군을 물리쳤다는 흥국사가 보인다.
진달래축제 행사장이 마련된 봉우재에 이르니 ‘흥국사 1.8km, 상암 1.7km, 정상 0.6km’라 적힌 이정표가 반긴다.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여수 영취산 진달래축제를 맞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막걸리 판매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컬컬했던 목을 축였다.
15분후 시루봉(430m)에 도착하니 이번엔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적셨다. 진달래가 만발한 시루봉 주위도 바위가 많다. 바로 아래에 헬기장이 있다. 사진 찍기에 둘도 없이 좋은 곳이었는데 몇 장만 담고 내처 달렸다.

영취산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그러나 영취산과 진례산 표기를 두고는 혼선을 빚고 있다. 최고봉인 510봉을 영취산이라 부를 것인가, 진례산으로 부를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것. 2002년부터 지역인들이 510봉은 영취산으로, 436.6봉을 진례산으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인쇄물이나 등산인들 사이에서는 뒤섞여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510봉이 진례산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영취산 진달래’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 진례산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여도중학교에서 진례산 지나 돌고개까지(10.6km)는 4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산행 중에 변수가 생기더라도 중간지점의 절고개를 이용해 탈출하면 된다.
원래 339봉에서 절고개로 빠질 계획이었지만 조금씩 지체되어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시간에 쫓긴 우리는 급한 마음에 동쪽의 내동으로 내려섰다. 임도를 건너 법현사 안내판을 보며 철탑과 납골당을 지나니 내동마을이 나왔다.
둔덕에 있는 콜택시를 부르니 10분이 채 안 되어 도착했다. 김태호의 차를 회수해 와서 예매해둔 열차의 출발시각 25분 전에 순천역에 도착했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20분 만에 홍도막걸리를 벼락치기로 두 병 비웠다.
출발 1분 전에 열차를 탔다. 갈 길은 서울이요, 최종 목적지는 집이라! 다시 복잡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해야하는 현실로 가슴이 먹먹했지만 캔 맥주 한 잔씩 나누며 낮에 보았던 영취산 진달래로 시름을 잊었다.
영취산(진례산) 산행 길잡이 ★★☆☆☆
상암초교?여수철망-(50분)-450봉-(20분)-진례산-(15분)-봉우재-(15분)-시루봉-(30분)-영취산-(25분)-절고개
만산홍화로 피어난 진달래에 취해 걷는 산
짧게는 6킬로미터, 길게는 11킬로미터를 넘는 영취산~진례산~호랑산 종주코스의 절반을 진달래가 뒤덮고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영취산은 능선을 따라 만개하는 진달래로 전국적인 명성이 드높은 곳이다. 암릉지대를 따라 피어난 진달래군락지를 걷는 꽃산행은 봄바람 속에 섞인 갯내음까지 더해져 더욱 근사하다.
북쪽 돌고개에서 진례산, 영취산을 지나 중간지점인 절고개까지 가도 좋고 남쪽의 호랑산을 이어 여도중학교까지 종주를 해도 무리가 없다. 종주는 4시간 남짓 걸린다. 상암초등학교에서 457봉을 올라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간 다음 진달래 만개한 남쪽으로 능선을 이어가는 코스가 인기 높다.
보통 4월 초?중순이면 진달래가 만개한다.
교통
용산역에서 광주(목포)행 KTX를 타고 익산까지 가서 다시 전라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익산까지는 KTX가 1일 19회(05:20~21:30) 출발하고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는 1일 17회(06:50~23:10) 다닌다. 익산에서 여수까지 가는 무궁화호는 1일 14회, 용산에서 여수까지는 무궁화호가 10회, 새마을호가 4회 다닌다. 용산에서 익산까지 KTX 요금은 주말기준 29600원이고 익산에서 여수까지 무궁화호는 8100원이다.
볼거리
영취산 주변에는 보물 3점을 간직한 흥국사와 도솔암이 있고 검은 모래로 유명한 만성리해수욕장도 가깝다. 이밖에 여수는 오동도와 돌산대교, 이충무공 전적비, 수변공원, 하멜등대 방파제, 고려성지, 망미공원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돌산의 갓김치는 전국적인 명물이 되었고 해돋이 명소로 이름난 향일암과 월암산성도 가볼만하다. 낭도, 사도, 개도, 거문도 등 점점이 흩어진 수많은 섬들은 저마다 빼어난 여행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