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芝蘭之交를 꿈꾸며
이 솜
마침
우리집 거실에 난 하나가
꽃을 활짝 피웠다.
한 송이가 애틋하게
꽃송이를 빼물기 시작하더니
이제 작심이라도 한듯
여러 송이가
소담하게 올라온다.
네 개의 난초 중
하나만이 꽃을 피워 올리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래도 마치 네 개의 화분에서
마음의 호흡을 이루어
이 한다발의 꽃들을
합심해 이뤄내는 것 같아 보여
한결 기특하다.
뭐랄까,
벗의 꽃핌을
함께 즐거워한다할까
하지만 그 즐거움은 서로 얽히지 않고,
딴 송이로 넉넉히 서있으면서
전체적인 풍경으로
겸허히 조응(照應)하는...
지나친 인간의 시선이겠지만,
자연이야 질투와 불화가 없으니
살아가는 방식의 명징함으로 보자면
그런 생각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안개가 있다.
그 안개 자욱할 땐,
누구나 서로에 대해
긴장하고 조심하고 어려워한다.
하지만,
세상 살아가다보면
그 안개 조금씩
걷히고 드러나는 얼굴들 있다.
그 얼굴이 너무 반갑고,
그 목소리,그 생각들 너무 좋아,
처음의 긴장들이 차츰 풀어지고
막역(莫逆)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막역이란,
무례(無禮)에 다름아니니,
이는 상대방의 포용의 품에 의지한
촐랑이의 짓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막역이야말로
우정의 둘도 없는 징표라고
생각하는 것이
얄궂은 우리 풍경이다.
이런 관계를
친압(親狎)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원숭이들끼리 서로 이유도 없이 툭툭 때리고
물고 장난치는 그런 친밀의 과시 말이다.
서로 좋아지고 편안해지다 보면
늘 이런 친압의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랑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의 긴장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거리인 것 같다.
두렵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래서 돌아서서 사모함도 짙어지는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때로 서릿발같은
매서움조차도
사랑의 인자가 아닌가 싶다.
난향을 키우는 것도
이런 서릿발이 아니던가.
내 마음이
너무
강퍅해져서 그런가.
지란지교를 꿈꾸던
관계의 옛 향기들이
그립다.
그윽한
사이(間)가 있는
하나의 향기가 넉넉히 넷의 향기가 되고도
스스로의 뿌리를 저버리지 않는
저
아름다운 난경(蘭景)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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